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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이해를 통해 관계 회복하기 본문
저녁 늦게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자 올해 초등학생이 된 아들이 오늘도 어김없이 숙제는 안 하고 핸드폰으로 정해진 시간을 넘어서까지 게임을 하고 있다. 게임만 하고 있는 아들을 볼 때마다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화를 겨우 참았다가도 결국에는 아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는 아들에 손에 쥐여진 핸드폰을 뺏어서 한 곳에 숨겨버리고 숙제부터 하라고 호통치게 된다.
많은 육아관련 서적들과 방송프로그램, 소아정신과 수련을 통해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대하기 보다는 공감적인 태도로 지시보다는 설명하는 식으로 아이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어야 함을 머리 속으로 알고는 있지만 막상 그 순간을 마주치게 되면 이성을 잃고(?) 자동반사처럼 아이에게 화를 내고 소리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아들이 아니라 나를 더 나무라고 아들은 숙제는 커녕 나하고 사이만 안 좋아져서 더욱 내 말을 안 듣게 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소아정신과 의사로서의 쓰라린 자기인식과 반성을 하게 된다.
왜 나는 머리로는 아들에게 친절하고 공감적인 태도로 양육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순간에 맞닥뜨리면 알고 있는 데로 행동하기 어려운 것일까?
그 이유는 알려진 대로 우리는 부모와의 사이에서 겪은 애착의 경험을 자기 배우자나 자신의 아이에게 재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애착이란 아기와 양육자의 유대관계를 말하며 아이의 안전감과 생존, 적응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체로 생후 24개월까지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알려져 있다(Bowlby, 1958). 또한 이 시기에 형성된 애착은 크게 안정형 애착, 저항/양가형, 회피형 애착으로 구분되며 사춘기를 지나 성인에게까지 이어져 일생동안 개인의 대인관계나 정서조절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Ainsworth, 1978). 특히 저항/양가형, 회피형에 해당하는 불안정애착을 보이는 영아들에 비해 안정애착을 보이는 영아들은 커서도 또래관계, 정서적 자기조절, 협응 행동, 학교생활 적응과 같은 발달 영역에서 향상된 기능을 보인다고 한다(Sroufe et al. 2005).
뿐만아니라 한 살 미만에 형성되기 시작한 애착유형은 성인까지 지속되는데 놀랍게도 70%가 그대로 유지되고 30%만이 변화된다고 한다. 성인애착검사를 통해 엄마의 애착유형을 조사해보면 영아의 애착유형과 유사하게 안정형, 회피형, 혼란형, 몰입형, 불안형을 나타낸다고 한다(George et al., 1985). 성인의 애착유형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안정형은 59%, 회피형은 25%, 그리고 불안형은 11% 정도로 나타난다고 한다(Mickelson, 1997).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엄마의 애착유형이 다시 영아에게까지 세대를 거쳐서 나타난다고 하며 그 비율은 75%까지 이른다고 한다(van Ijzendoom, 1995) .
최근의 연구에서는 불안정 애착유형이 불안, 우울같은 정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 증상과 중독, 청소년기의 반항이나 비행, 자살 위험성과도 연관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실제로 임상경험을 통해서도 양육시기에 어떠한 이유에서든 아이가 부모와 안정형 애착을 이루지 못하면 이후에 그 아이가 청소년이나 어른이 되어서도 어떠한 형태로던 정신과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것을 자주 진료실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이 어릴 때 부모의 보살핌이 부족하여 안정형 애착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자신이 부모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대물림되는 애착유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긍하여야 할까?
다행히도 연구에 의하면 안정애착은 획득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비록 어린 시절 주양육자와 불안정한 애착을 맺었다 하더라도 이후 인생에서 가까운 친구나 연인, 심리치료사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경험하게 되면 앞에 말한 30%정도의 사람들은 어릴 때의 불안정한 애착유형이 안정애착 유형으로도 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획득된 안정애착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자신의 애착유형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진료실에서 심리검사를 받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인터넷에도 애착유형을 간단하게 검사해보는 검사가 나와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음에 할 일은 자신의 애착유형이 현재의 대인관계에 어떻게,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자신의 애착유형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돌아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애착유형의 시점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한 번 돌아보는 것 자체로도 앞으로의 변화를 위해서 큰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그 다음엔 자신의 ‘안전기지’를 찾는 일이다. 안전기지란 어느 때도 안심하고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쓰러질 것 같은 때 곧바로 손 내밀어 안아줄 존재다. 애착이 안정되려면 안전기지가 될 존재가 반드시 지속적으로 있어야 한다(오늘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애착장애, 오카다 다카시, 2021). 따뜻하고 공감해주는 부모가 아이에게 ‘안전기지’가 되었던 것처럼 성인이 되었더라도 힘들 때 의지할 만할 존재가 필요하다. 새로 맺게 된 안전기지가 되는 존재와의 관계 경험를 통해서 이전의 관계 경험을 수정하고 교정해나갈 수 있다. 안전기지의 대상은 종교, 선생님, 친구, 연인, 배우자, 상담자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안정된 대상과의 새로운 관계 경험을 통해 안정애착의 틀이 자리를 잡아야 자신도 안전기지의 역할을 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애착의 틀을 새로 배우는 일이 시간도 걸리고 지난한 과정이 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과정이 우리 삶의 보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기쁨과 의미를 되찾으며 아이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 되리라 확신한다.
윤진웅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장
출처 :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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